블로그 

카페

 

하나님말씀(천부경)

철학

종교

철학과 종교

철학이 뭐꼬? 종교가 뭐꼬?

 

 

 

철학과 종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하는 자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여기서 다 쓰려면 아마 책 한권이 나올겁니다. 그러나 그 대답을 하나로 줄이면 '우주 만물이 나고 변하는 이치'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철학은 학문적으로 배울려고 하고, 종교는 가르침에 대해서 믿음(신앙)을 가지고 따르는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우주만물이 나고 변하는 이치'라고 언급을 했습니다만,사실 저 간단한 언급 속에는 엄청난 숫자의 개념들이 뒤범벅이 되어 나타납니다. 아마 인터넷을 검색해서 잠시만 뒤져 보면 그 사실을 인정할 겁니다.

사실 우리가 철학(philosophy)이다, 종교(religion)다 하면서 말을 쉽게 하지만, 저 단어를 처음 만들 때의 원래 의미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분명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의 이름을 지을 때, 작명가가 생각한 그 의미와 같은 것이겠죠. 그러나 우리들이

(도서출판)바른소리에서 출간한 책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그 이름에 온갖 것들이 덧씌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 그런 말의 원래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글자가 원래 道에 따라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제하면, 글자 자체의 의미로서 풀어 보는 것도 두 개의 차이점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배운다는 의미의 學자를 보면 윗 부분에서 양쪽으로 조금 다른 것이 마주 보고 서있습니다. 이는 바로 옳은 것과 그렇지 않는 2개를 상정해 놓고 격론을 벌인다는 것이 가운데 있는 2개의 x표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만으로도 학문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敎는 가르친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봐서 대체로 반론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전자는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쓰는 글자이며, 후자는 가르치는 선생 입장에서 본 글자인 셈이죠.

그래서 철학에서는 이성이 중요시 되고, 종교에서는 신앙이 우선시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종교에서는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유드리가 별로 없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철학에서는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앞세워 논리적으로 반박하게 되면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죠.

 

종교에서 저렇게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엄격한 것은 항상 메시아격의 선지자가 나타나서 그가 한 말을 원천적으로 거스르기가 굉장히 힘이 들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봐야겠죠. 그의 가르침을 따르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든지 2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를 강요받습니다. 물론 선지자의 말을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융통성문제가 있기는 해도, 근원적으로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를 들여다 보면 사실로 받아 줘야 하지 않을까요?

가끔은 철학과 종교를 역사성에서 무엇이 앞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생겼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라는 주장을 할만큼 설득력이 있다고 보긴 힘들겠죠. 마치 인간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진리에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둘 다 세상이 어지러워지고부터 다시 진리를 찾고자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의 궁극적인 목적 내지 목표가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한자어나 영어 모두, 그 말 속에는 그런 뜻이 들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겁니다.

그러나 앞에서 풀은 여러 설은 뒤로 하고 정말로 하나님말씀(道)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한번 보기로 하죠. 하나님말씀 편을 읽어 봤다면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말씀의 기본 골격이 하나부터 셋까지는 삼위일체의 개념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천지인이니 음양중이니 온갖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죠. 불교에서는 깨달음으로 붓다가 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인데, 아마도 그 부처의 존재가 저 하나 둘 셋의 이치를 깨닫는 것일겁니다. 그 중에서도 셋에다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볼 수 있겠네요. 물론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개념을 아주 중요한 가치로 받드는 걸로 봐서 똑같이 하나 둘 셋의 개념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한민족이 좋아하는 숫자 3의 의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셋의 뿌리인 하나(님)를 믿는다고 하면 이는 神을 믿는 것이 되죠. 유대인들의 언급으로 봐서는 기독교의 야훼의 개념이 바로 저 하나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그럼 철학 쪽을 한번 가봅시다. 철학이라 하면 아무래도 서양쪽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있으니까, 그 쪽의 시조라 하는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봅시다. 그에 대해서 배운 것은 아마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책에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물(水,water)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말은 맞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틀린다고 하는 것은 햇빛이 없으면 생물은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맞다고 하는 것은 물이 있으면 빛은 항상 있다는 것이죠. 그럼 물이 뭔지 한번 보기로 합시다. 우리말로는 '물'이고 글자로는 水, 영어로는 water이고 그것을 화학식으로 나타내면 H2O입니다. 아마 각각인 기호 속에는 똑같은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이라 하는 소리의 의미 속에는 뭔가 숨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존재(ㅁ)가 그 속에 숨어서 계속 움직인다(ㄹ)는 뜻이 들어 있는 소리가 바로 '물'입니다. 물 속에 神이 숨어 있다는 것이죠. 탈레스가 한 말의 의미를 우리말 '물'속에서 찾아 낼 수 있습니까? 그럼 물의 의미 속에서 H2O의 냄새를 맡을 수 있나요?

현대 서양철학도 똑같습니다. 그 어렵다는 과정철학은 아마도 일곱 여덟 아홉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온갖 어려운 말과 기호로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죠. 동양철학은 글자의 뜻을 알지 못하는데다 워낙 지나인들이 저지래를 많이 해놔서 길을 잃어 버려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구요. 어쨌든 동서양 철학의 다른 점은 다른 장에서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똑같은 것을 우리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다른 쪽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접겠습니다.

 

 

 

Since  2000.12.12
Copyright (c), imWay.com
All rights reserved